사운드스케이프

소리의 명소 만든다
사운드스케이프(SOUNDSCAPE)

글: 정강화(건국대 디자인학부 교수)


라디오 프로그램 중에서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라는 짧은 코너가 생각난다. 모내기나 김매기, 나무를 벨 때 혹은 장례식에 부르는 노래 등 우리 선조들이 멋들어지게 때로는 구슬프게 부르던 노래들을 녹취하여 들려주는 것인데, 재미도 있고 한편으로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좋은 프로그램이라 생각한다. 잊혀져 가는 소리를 일깨운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 있고 각 지방의 특색이 녹아있는 소리들이 또 하나의 문화를 느끼게 해준다.
소리풍경의 미학, 소리의 문화 발견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잊혀져 가는 소리뿐 아니라 최근에는 여러 가지 다양한 ‘소리’들을 도시를 만드는 환경 디자인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적극적으로 도입하려는 시도가 나타나면서 ‘사운드스케이프(soundscape)’라는 개념이 주목을 받고 있다. 사운드스케이프란 캐나다의 작곡가 쉐퍼(R. Murray Schafer)에 의해 이미 1969년 제창된 개념으로, 조경을 의미하는 랜드스케이프(Landscape)에서 원용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당초 음환경 전체를 작품으로 보자는 의미에서 제시된 표현이었다.
이러한 개념이 나타나게 된 배경으로 20세기 예술운동으로 인해 음악과 비음악(환경음)이 구별되는 대립 관계가 해소된 것을 계기로 악기의 소리뿐 아니라 모든 소리가 음악의 대상이 되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던 데 있었다 하겠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작곡가가 된 쉐퍼는 비음악으로 취급되던 환경음에 주목하고, 일상적 소리에 대한 무관심이야말로 현대의 소음 문제의 주요인이라 주장했다. 이러한 쉐퍼의 사상은 현대음악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 것은 물론 나아가 환경 디자인 영역에 더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사운드스케이프라는 개념으로 우리는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소리풍경의 미학, 우리 생활환경에 녹아있는 풍부한 ‘소리의 문화’를 발견하게 된다. 예를 들면 시장에서 물건을 파는 상인들의 외침, 경매하는 소리, 골목 안 두부장수의 종소리와 엿장수 가위소리, 예배당의 종소리, 유치원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 기차소리, 소방차나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 자전거 벨소리, 오토바이 소리 등 우리들의 삶의 주변에는 수없이 많은 소리가 있고, 이는 지역과 시대에 따라 달라졌다. 이러한 소리는 인간에게 있어 물리적인 존재이면서 그 위에 문화적인 존재이다. 물리적인 접근을 도시계획 차원에서 실천하는 것에는 소리의 문화적 측면을 중시하는 ‘사운드스케이프’라는 사고법을 바탕으로 전개시킬 필요가 있다.
사운드스케이프의 개념과 그 사고법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각각의 소리를 독립적으로 다루지 않고 그것들의 조합이 구성하는 소리 환경 전체를 하나의 ‘경관’ 혹은 ‘풍경’의 개념을 가지고 전체적으로 다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소리는 하나하나 존재하지만 동시에 들려오는 복합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고, 또 시각적 경관과 상호작용을 가지므로 총체적 접근이 요구되는 것이다.
다음으로 중요한 점이라면 소리를 물리적인 존재로서 다루는 것뿐만 아니라 특정 사회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어떠한 소리를 들어 어떻게 의미를 부여하고 가치화할 수 있는가에 관한 것이다. 즉 인간의 소리 환경을 하나의 ‘문화’로서 다루고 또한 ‘소리’라는 관점에서 지역의 문화를 다루는 것이 사운드스케이프 사고법의 기본이다.
이 개념 성립과 전개의 배경에는 지금까지 ‘시각 우선’, ‘물체 중심’의 근대 서양의 경관 설계와 환경 디자인의 영역에서, 시각의 그늘에서 나타나지 않았던 청각과 같은 보다 부드러운 감각 요소를 도입함으로써, 인간의 전체적인 감성에 대응한 디자인 활동을 전개해 간다는 사고방식이 존재한다. 또한 각 지역의 독특한 조건이나 문화를 바탕으로 하면서, 나름대로 특질을 살린 디자인을 전개해 간다는 사고가 바탕이 되고 있다.


소리의 관점에서 지역문화를 다루는 것
이러한 사운드스케이프 디자인의 개념을 가지고 특정 지역의 적용을 예로 든다면, 고려해야 할 것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소리’의 종류로서는 ‘음악’처럼 인위적으로 창작, 디자인된 것뿐만 아니라 비나 바람소리, 생물의 울음소리와 같은 자연계의 소리, 사람이 내는 소리, 기계의 소리, 음향 미디어의 소리도 문제가 되고, ‘기억’과 ‘이미지’와 같은 소리도 포함된다.
다음에는 이러한 것이 그 지역 사람들의 생활에 있어서 어떻게 연관되고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문제로 한다. 더불어 소리 그 자체의 차원을 넘어서 그런 소리가 영향을 미치는 ‘공명상자’로서의 지형과 공간의 특질도 문제삼는다.
구체적 사례를 예로 들면, 교통량이 많은 도로 옆에 작은 분수와 물길을 설치한 경우 보행자가 바라보면서 걸을 수 있고 자동차의 소음을 경감시키며 물소리와 분수의 움직임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기울어지게 된다.
또 일본의 경우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소리의 명소’ ‘지키고 싶은 소리의 풍경’ 등을 정해 지역문화를 부각시키고, 주민들에게 소리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하며 나아가 관광요소로도 활용하는 등 입체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다른 예로 대도시의 워터프론트 개발의 경우, 도로나 제방 또는 인공 언덕 등으로 파도의 울림이 별로 들리지 않게 되었지만, 사운드스케이프 개념의 도입으로 소리에 대한 설계상의 배려가 행해지고 나아가서는 물에 대한 접근이 용이하도록 구조적 대응을 마련하는 등 적극적인 방법들이 시도되고 있다.
이러한 사례들은 크게 소음의 규제와 같이 바람직하지 않은 소리들을 없애는 방향으로 접근하는 마이너스(-) 측면의 것들과, 아름답고 지역적 특성을 반영하는 남기고 싶은, 나아가 옛 소리를 보존하고 부활시키는 플러스(+)적 측면의 예들이 있다. 소음이라고 하면 원하지 않는 소리 혹은 듣기 싫은 소리 등으로 정의되어 없애야 할 것으로 분류되지만, 소리의 의미나 기능을 그 바탕이 되는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읽어 검토하는 관점이 필요하다. 바람직한 소리를 더해 가는 (+)적 사례로는 소리를 내는 예술작품인 음향 조형물의 설치, 자연의 소리를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것, 그 지역에 유명했던 과거의 소리를 되살리는 것 등이 포함된다.
지난해 월드컵에서 우리들의 기억에, 세계인들의 기억에 각인된 ‘대∼한민국’은 시청 앞 광장의 사운드스케이프 디자인의 개념으로 도입한다면 새로운 문화적 유산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 ‘보는 풍경’뿐 아니라 ‘듣는 풍경’ 창조
소리는 아주 높은 공공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디자인 활동은 소리가 각각 환경에서 수행하는 역할, 현장의 전체적인 환경의 조건, 사회적 문화적 조건을 충분히 배려하고 검토한 위에 행해져야 할 것이다. 단순히 소리 만들기나 소음의 관리나 연출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 시스템의 디자인도 포함한 소리 환경 디자인으로 전개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공공공간의 소리 환경 디자인에 있어서 최종적으로 필요한 것은 지금까지 개별적인 대상으로 다루어져온 소리를 사회나 문화의 환경 안에서 자리매김을 하는 것이고, 그러한 사고법과 기반을 제고하는 것이 사운드스케이프의 개념과 사상이다. 또 ‘소리의 전문가’에 의해서만 이루어진다고 생각하기 쉬운 소리 환경 디자인이 ‘소리가 있는 곳의 형성’이란 의미로 사운드디자이너뿐 아니라 도시 환경 디자인, 건축설계, 공원설계 등 여러 분야의 디자이너, 나아가 일반 시민들의 참가에 의해 결정되는 영역이라는 것을 인식해 나갈 때 아름답고 개성적인 ‘보는 풍경’뿐 아니라 ‘듣는 풍경’의 창조가 가능할 것이다.



by 스태파노 | 2006/08/16 12:57 | - ∴Medium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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